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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식이야기39 기원전 137년, 26세가 된 티베리우스는 에스파냐에 파견하기로 결정된 군단의 회계감사관(콰이스토로)으로 선임되었다. 나중에 동생 가이우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때 티베리우스는 에스파냐로 가는 길에 토스카나 지방을 지나게 되었는데, 넓은 토지에 자작농들은 보이지 않고 온통 외국에서 끌려온 노예들만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책임감이 강한 젊은 엘리트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에스파냐에 도착한 뒤에도 끊이지 않았다. 티베리우스가 종군한 군단이 에스파냐에 파견된 것은 40년 만에 일어난 반란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티베리우스의 아버지가 실시한 통치방식은 현지 주민을 고려한 것이었기 때문에 성공했고, 반세기 동안이나 에스파냐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오랫만에 에스파냐..
잡식 이야기33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이어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문명' 이라는 어휘는 신석기시대 문화로부터 불리워진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하게 되는 시기다. 그것이 바로 토기의 발명이다. 흔히 동방에서의 시원적인 문명을 '황하문명'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황하문명의 발상지가 발해를 중심으로 황하 하류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발해연안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늘 시사해왔었다. 여기에서 발해연안이라 함은 지정학적인 위치가 아니라 문화적인 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발해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국의 태행산(太行山)이동 하북성(河北省) 일대와 하남성(河南省) 동북부 일부, 남쪽으로는 산동반도, 북쪽으로는 대흥안령(大興安嶺) 이남 요녕성(遼寧省) 일대,..
잡식 이야기32 서한 고조 유방은 5년간의 전쟁 끝에 강적 항우를 물리치고 튼튼한 왕조를 세웠다. 그런데 그 직후 논공행상에서 군신은 서로 공을 다투며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고조는 공로가 제일 큰 소하를 제후에 봉하고 영지도 가장 많이 내렸다. 그러자 일부 무장들이 들고 일어섰다. "소신들의 공로는 모두 목숨과 맞바꾼 것입니다. 소신들은 견고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각지를 전전하며 용감하게 싸웠 습니다. 많게는 백여 번, 적게는 몇 십 번의 전투를 치렀습니다. 전투의 공로는 서로 크고 작음이 있지만, 모두 이바지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하는 어떻습니까? 그가 전장에서 세운 공로가 있습니까? 그저 입이나 놀리고 글줄이나 쓸 줄 알았지 단 한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잡식 이야기31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법칙 "인생은 사람이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이 말은 많은 성공 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나 역시 인생 경험을 통해 "마음이 부르지 않은 것은 얻을 수 없다." 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즉 이미 실현된 것들은 전부 자신이 마음속으로 원한 것 들이며, 미리 생각하지 않은 것은 이루어질 수도 없다. 다시말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소망이 그대로 인생에서 실현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떤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우선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누구보다 강렬하고 애절한 열의를 가지고서 바라고 원해야 한다. 그것을 내가 실감한 것은 벌써 40여 년 전,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辛之助)의 강연을 처음 들..
잡식 이야기30 카르타고 정부는 겨울철 휴전기도 기다리지 않았다. 하밀카르에게 전령을 급히 파견하여, 로마에 강화를 제의하라고 명령했다. 집정관 카툴루스도 하밀카르의 제의에 응했다. 카툴루스와 하밀카르가 동의한 강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에서 철수하고, 시칠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영원히 포기한다. 2. 카르타고는 시라쿠사를 포함한 로마 동맹국들에 대해 싸움을 걸지 않기로 약속한다. 3. 포로는 양국 모두 몸값을 받지 않고 석방한다. 4. 카르타고는 로마에 대한 배상금으로 2천 200탈렌트를 10년 분할로 지불한다. 5. 로마는 카르타고의 자치와 독립을 존중한다. 기원전 264년부터 시작하여 23년 동안 계속된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41년에 끝났다. 카툴루스는 그해 6월..
잡식 이야기27 카툴루스는 돛을 내리고 노만 저어서 출동하라고 아군 함대에 명령했다. 서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 로마 함대는 마레티모를 떠나려 하고 있던 카르타고 함대 앞을 가로 막았다. 이미 전투태세에 들어간 로마 함대를 보고, 카르타고 함대도 돛을 내렸다. 해전은 노젓기만으로 배를 조정하면서 싸우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돛을 내리는 것은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다. 서풍은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었다. 돛을 내려도 대형선이기 때문에 강하게 밀린다. 강풍과 높은 파도에 밀린 카르타고 군선들은 동쪽에 진을 친 로마 함대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왔다. 여기저기서 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격돌로 맞물린 배에서 적선으로 옮겨타고 싸우는 병사들의 함성이 주위를 압도했다. 마키아..
잡식 이야기25 그리스 북부에 있는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한니발보다 60년 전에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로마군과 정면 대결을 벌였다. 한니발이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무장으로 꼽은 세 사람 가운데 로마군과 전쟁터에서 대결하지 않은 것은 알렉산드로 대왕 한 사람 뿐이었다.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충격' 에서 겨우 일어선 로마가 이탈리아 중남부에서 세력을 확립한 시기와 마케도니아의 풍운아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에서 풍운을 일으킨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 로마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건국되었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건국 초기부터 이들의 함은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번영은 사람들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든다. 로마인한테는 훌륭히 통했던 피로스의 기사도 정신도..
잡식 이야기24 귀족, 즉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귀족은 클리엔테스를 보호하고, 클리엔테스는 귀족의 보호를 받는다고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귀족의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 클리엔테스들이 공동으로 귀족을 도왔다. 반대로 클리엔테스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위기에 빠지면 귀족이 도왔다. 훨씬 뒤의 일화이지만,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와 품페이우스의 대결이 막판에 이르렀을 무렵의 일이다. 카이사르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보좌관인 라비엔누스가 품페이우스 편에 붙기 위해 카이사르 곁을 떠났다. 8년 동안이나 계속된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라비엔누스는 카이사르가 무장으로서 얼마나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에, 카이사르와 품페이..
잡식 이야기22 어느 민족이든 전승(傳承)이나 전설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확실히 하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망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해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은 과학적인 해명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따르면, 소아시아 서안의 풍요로운 도시 트로이는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군의 공격을 받아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공방전도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해변에 서 있는 거대한 목마를 발견한 트로이 사람들은 그 목마를 그리스군이 공략을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남긴 선물로 오해하고, 10년 동안이나 지켜온 트로이 성 안으로 목마를 끌어들이고 만 것이다.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트로이 병사들이 깊이 잠든..
잡식 이야기18 어느 날 한나라 문제가 후궁 가려와 함께 상림원에 소풍을 가서 진기한 새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호랑이 우리 앞에 도착한 그는 상림원 책임자인 상림위에게 그곳의 면적과 새들의 종류, 다른 동물들의 현황등 열 가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상림위는 우물쭈물하며 자세한 숫자를 답하지 못했다. 그는 직무를 등한시하여 그곳 일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호랑이 우리를 관리하는 색부가 대신 답을 했다. 그는 말이 유창하고 분명해 문제는 크게 만족했다. 문제는 관직에 있는 자라면 마땅히 자기 업무에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국가의 녹을 헛되이 받지 않는 것이며 백성들도 불만이 없다. 문제는 당장 색부를 상림령에 봉해 관리들의 귀감으로 삼으려 했다. 이때 같이 왔던 신하 장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