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요리사 (82)
음식점구인구직 잡식
잡식이야기37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 승패는 이미 판가름났으니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거기서 얻은 경험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후세에 살고 있는 우리는 기원전 241년에 끝난 제1차 포에니 전쟁과 기원전 218년에 일어난 제2차 포에니 전쟁 사이에 23년의 세월이 막간 처럼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 23년을 로마인과 카르타고인은 각각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문제다. 이 23년은 모든 로마인과 대다수 카르타고인에게는 휴전 기간이 아니었다. 로마인도, 극소수를 제외한 카르타고인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전쟁이 또다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밀카르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의 마지막 6년을 용감히 싸웠지만, 해군이 해전에서 패했기 때문에 강..
잡식이야기36 고대의 동방에는 크게 화하족(華夏族)과 동이족(東夷族)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한족(漢族, 중화족)과 한족(韓族. 조선족)으로 대표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같은 민족끼리 어떤 상징적인 동물을 숭상하는 토템 (totem)을 가졌는데, 화하족인 중국 민족은 용(龍)을 토템으로 삼았고, 동이족인 한민족은 새(조(鳥))를 토템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 민족은 모두 용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는데 용은 곧, 중국 민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황하문명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는 동방 최고의 용의 형상이 화하족의 본향인 황하유역의 중원(中原) 지방을 크게 벗어난 지점인 바로 발해연안 북부의 대릉하 유역과 서요하 유역에서 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잡식 이야기33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이어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문명' 이라는 어휘는 신석기시대 문화로부터 불리워진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발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적 발명을 하게 되는 시기다. 그것이 바로 토기의 발명이다. 흔히 동방에서의 시원적인 문명을 '황하문명'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황하문명의 발상지가 발해를 중심으로 황하 하류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발해연안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늘 시사해왔었다. 여기에서 발해연안이라 함은 지정학적인 위치가 아니라 문화적인 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발해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국의 태행산(太行山)이동 하북성(河北省) 일대와 하남성(河南省) 동북부 일부, 남쪽으로는 산동반도, 북쪽으로는 대흥안령(大興安嶺) 이남 요녕성(遼寧省) 일대,..
안녕하세요. 한식맛집 입니다. 한식의 세계경영이 2013년 1월 12일 부터 한식맛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지 카페이름만 바뀌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기존과 동일합니다. 그동안 한식의 세계경영 이라는 카페명을 사랑해준 회원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보다 회원님들께 좋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입니다. 맛집과 요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한식맛집에는 맛집정보, 요리정보, 여행정보, 패션정보, 뷰티정보가 있습니다. 회원님들께는 예전에 의견을 구하였으나, 제대로 의견 수렴이 되지를 못하였고, 간간이 한식의 세계경영이라는 카페이름이 좋다는 의견도 많았었습니다. 한식맛집을 잘 이용하셔서 건강한 삶이 되었으면..
잡식 이야기32 서한 고조 유방은 5년간의 전쟁 끝에 강적 항우를 물리치고 튼튼한 왕조를 세웠다. 그런데 그 직후 논공행상에서 군신은 서로 공을 다투며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고조는 공로가 제일 큰 소하를 제후에 봉하고 영지도 가장 많이 내렸다. 그러자 일부 무장들이 들고 일어섰다. "소신들의 공로는 모두 목숨과 맞바꾼 것입니다. 소신들은 견고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각지를 전전하며 용감하게 싸웠 습니다. 많게는 백여 번, 적게는 몇 십 번의 전투를 치렀습니다. 전투의 공로는 서로 크고 작음이 있지만, 모두 이바지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하는 어떻습니까? 그가 전장에서 세운 공로가 있습니까? 그저 입이나 놀리고 글줄이나 쓸 줄 알았지 단 한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잡식 이야기31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법칙 "인생은 사람이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이 말은 많은 성공 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나 역시 인생 경험을 통해 "마음이 부르지 않은 것은 얻을 수 없다." 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즉 이미 실현된 것들은 전부 자신이 마음속으로 원한 것 들이며, 미리 생각하지 않은 것은 이루어질 수도 없다. 다시말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소망이 그대로 인생에서 실현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떤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우선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누구보다 강렬하고 애절한 열의를 가지고서 바라고 원해야 한다. 그것을 내가 실감한 것은 벌써 40여 년 전,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辛之助)의 강연을 처음 들..
잡식 이야기30 카르타고 정부는 겨울철 휴전기도 기다리지 않았다. 하밀카르에게 전령을 급히 파견하여, 로마에 강화를 제의하라고 명령했다. 집정관 카툴루스도 하밀카르의 제의에 응했다. 카툴루스와 하밀카르가 동의한 강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에서 철수하고, 시칠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영원히 포기한다. 2. 카르타고는 시라쿠사를 포함한 로마 동맹국들에 대해 싸움을 걸지 않기로 약속한다. 3. 포로는 양국 모두 몸값을 받지 않고 석방한다. 4. 카르타고는 로마에 대한 배상금으로 2천 200탈렌트를 10년 분할로 지불한다. 5. 로마는 카르타고의 자치와 독립을 존중한다. 기원전 264년부터 시작하여 23년 동안 계속된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41년에 끝났다. 카툴루스는 그해 6월..
잡식 이야기29 용병을 주축으로 한 시라쿠사군은 비록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로마군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금방 격파당하고, 참주 히에론을 앞세워 남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전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도 클라우디우스의 전격작전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겨울이 닥쳤다. 남국 시칠리아에서도 관습에 따라 겨울에는 휴전에 들어간다. 히에론은 시라쿠사가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고 방어시설도 완벽하기 때문에 쉽사리 함락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시라쿠사가 로마와 싸우는 동안 카르타고가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었다. 히에론이 보낸 강화사절이 로마군 진영을 방문했다. 로마의 두 집정관은 생각지도 않은 수확에 덤벼들었다. 로마 쪽에서 제시한 강화 조건은 간단하고 관대했다. 1. 양국의 동맹관계는 ..
잡식 이야기27 카툴루스는 돛을 내리고 노만 저어서 출동하라고 아군 함대에 명령했다. 서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 로마 함대는 마레티모를 떠나려 하고 있던 카르타고 함대 앞을 가로 막았다. 이미 전투태세에 들어간 로마 함대를 보고, 카르타고 함대도 돛을 내렸다. 해전은 노젓기만으로 배를 조정하면서 싸우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돛을 내리는 것은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다. 서풍은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었다. 돛을 내려도 대형선이기 때문에 강하게 밀린다. 강풍과 높은 파도에 밀린 카르타고 군선들은 동쪽에 진을 친 로마 함대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왔다. 여기저기서 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격돌로 맞물린 배에서 적선으로 옮겨타고 싸우는 병사들의 함성이 주위를 압도했다. 마키아..
잡식 이야기25 그리스 북부에 있는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한니발보다 60년 전에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로마군과 정면 대결을 벌였다. 한니발이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무장으로 꼽은 세 사람 가운데 로마군과 전쟁터에서 대결하지 않은 것은 알렉산드로 대왕 한 사람 뿐이었다.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충격' 에서 겨우 일어선 로마가 이탈리아 중남부에서 세력을 확립한 시기와 마케도니아의 풍운아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에서 풍운을 일으킨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 로마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건국되었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 건국 초기부터 이들의 함은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번영은 사람들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든다. 로마인한테는 훌륭히 통했던 피로스의 기사도 정신도..